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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땅에서 부활의 땅으로, 포천 아트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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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땅에서 부활의 땅으로, 포천 아트밸리


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


해발 380m의 산중에 돌을 캐고 난 뒤 드러난 웅덩이에 샘물과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청록의 호수, 그 좌우에 우뚝 선 50m높이의 수직 절벽, 수면에 비친 절벽 그림자. 이 모두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신비 그 자체이다.


절벽 사이로 소공연장과 이벤트 광장까지 보인다.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당혹함이라고 할까, 신비함이라고 할까, 경기도 천추산 아래에 자리한 ‘포천 아트밸리’는 사람을 그렇게 놀라게 한다.


사용하지 않거나 폐허가 된 산업유산을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재생으로 연결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영국, 일본 등 외국의 경우 근대건축물 및 근대산업유산을 보존하고 문화예술 용도로 활용하여 지역의 창조공간 형성 및 창조적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거점을 형성하고 있다. 화력발전소를 활용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 기차역을 활용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맥주공장을 활용한 일본 삿포로의 삿포로 팩토리 등 선진국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국내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포천 아트밸리는 산업유산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격 중의 하나이다. 포천 아트밸리는 자연 훼손의 현장인 폐 채석장을 ‘부활의 땅’, ‘생명의 땅’으로 재생시키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천추산 14만743㎡은 1972년부터 2002년까지 30여년간 품질 좋은 화강암인 '포천석'을 생산하던 채석장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에 채석이 끝나자 흉물로 방치됐다. 그러나 10여년간 사람의 접근이 차단됐던 자연훼손의 폐석산이 문화예술이 숨쉬는 ’예술 계곡’으로 새로 태어났다.


막걸리와 군대의 이미지가 강한 포천이 아트밸리로 브랜드를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아트밸리 조성은 2003년 포천시가 지역특화사업으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시발이 되었다. 처음에는 폐 채석장이라 어차피 자연 상태로 복구가 어려운 만큼 돌을 캐내고 남은 암벽에 큰 바위 얼굴을 조각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그러나 이것도 자연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색적인 풍경을 활용해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으로 전환했다. 주목한 것은 채석장의 독특한 경관이었다. 유화를 그리는 칼에 물감을 찍어 굵게 눌러 내린 듯한 절개지의 조형적 가치를 살리는 방안을 모색했다. 답은 ‘아트밸리’였다.


포천시는 2004년부터 부지를 매입, 아트밸리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에게 자문을 구했다. 경기도는 수도권정비계획법·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규제로 발전이 늦어지는 포천을 위해 도비 100억원을 지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 조성사업’ 차원에서 국비를 지원했다.


이렇게 하여 길이 1.32㎞, 폭 10m의 진입로를 만들고 연면적 2184㎡ 규모의 전시관을 지어 예술창작공간을 마련했다. 야외공연장 2곳과 이벤트 광장도 조성했다. 노인과 어린이 등의 편의를 위해 매표소에서 전시관까지 경사 23도, 420m 길이의 주보행로 위 공중에 민간자본 45억원을 유치해 5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모노레일을 설치했다.


포천시는 모두 155억원을 들여 이 일대 14만㎡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선 울퉁불퉁한, 수직에 가까운 바위 벽면이 말끔히 정리돼 거대한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화강암은 지질학적 특성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등 건축물을 짓는 데 사용된 화강암을 캐낸 절벽 아래에는 잔잔한 호수가 펼쳐져 있다. 호수는 축구장 1.5배 크기다.


계곡물을 돌려 만든 호수는 청록색, 청옥색, 하늘색 등 계절별로 다양한 빛깔을 연출한다. 이곳에는 1급수에만 자라는 버들치 도룡뇽, 가재, 피라미 등이 헤엄치고 있다. 호수와 절벽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호숫가에는 전망 데크를 만들고 공연이 가능한 무대도 만들었다. 화강암 수변 무대에는 전국에서 독특한 것만 해보기 위해 화강암에 스크린 걸어 영화제도 해 보았다.


조각공원, 쉼터도 조성했다. 카페도 산책로 겸 전망대도 만들었다. 이들간에 동선을 최대한 연결시켜 문화예술에 대한 감상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채석장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자연미를 살리는 대신, 자연 훼손에 대한 반성의 여지도 남겨두는 걸 잊지 않고 있다.


아트밸리는 이처럼 산뜻한 모습으로 10월 24일에 개장했다. 휴일 평균 1,500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평일에는 700여명이 찾고 있다. 훼손된 자연을 복구하고 복구된 공간을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활용한 발상의 전환이 주효했다. 아트밸리의 매력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화와 만날 수 있다는 점, 특히 산업화 시대에 인간이 훼손한 자연을 친환경적인 문화공간으로 되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포천시는 기반구축 단계를 넘어 이제 콘텐츠를 어떻게 채우고 또 풍성하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겨울에는 호수의 얼음으로 조각 작품을 만드는 축제도 검토하고 있고, 인근의 허브 식물원 뿐 아니라 현대 아산의 개성관광과 연계도 모색하고 있다. 그러면 문화예술 관광도시로서의 이미지 제고 뿐 아니라 관광수요 확대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세계는 환경과 자연을 활용한 ‘녹색발전’으로 문명의 기어를 바꾸기 시작했다. 자연의 복원과 산업유산 재활용을 통한 포천 아트밸리의 선지식〔善∙先知識〕이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