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과거자료)
국내지방자치동향 (~ 2019.12)
국내지방자치단체들의 주요 움직임과 활발한 정책 수행에 대한 정보를 알려 드립니다.
지역상인이 주도한 재래시장 살리기-인천 부평구 문화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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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인천의 ‘이태원’이라고 불리며 문전성시를 이루던 부평시장의 호황이 기세를 꺾이게 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단위 택지개발에 따른 신흥상권의 부상 때문이었다. 80년대 이후 재래시장의 위기는 비단 부평시장 뿐만 아니라 전국의 재래시장이 동시에 겪게 된 것이기도 했다. 새로운 업태로서 슈퍼마켓의 등장과 이후 90년대 들어서 확산된 대형 할인점의 등장으로 재래시장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화된 대형할인점의 편의성과 쾌적성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발걸음은 점점 재래시장으로부터 대형할인점으로 옮겨갔고, 변심한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부평상인들은 재래시장의 활성화 방책으로 무엇보다도 ‘쾌적한 쇼핑공간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부평재래시장 한 가운데 ‘문화의 거리’를 조성해달라는 청원을 부평구청에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상인들의 염원을 받아들여 부평구청은 1998년 2월, 부평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였다.
부평 문화의 거리는 곧바로 차없는 거리로 지정되었고, 270m의 구간에 가로수와 벤치, 가로등을 설치하였으며, 아스팔트 도로는 붉은 벽돌로 대체되었다. 쾌적한 거리환경을 유지하기 위하여, 불법 노점상들에 대해서는 구청과 노점상간 계약체결에 의한 입점 허가제를 적용하고, 영업이 끝난 저녁시간 이후에는 이동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러나 조성 이후 거리 관리에 힘쓰지 않아, 얌체 운전자들로 인해 차량통행제한 시설물이 파손된 채 방치되거나, 이동식 시간제 노점이라는 계약을 파기한 채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영업을 하는 노점들로 인하여 부평 문화의 거리는 ‘문화’없는 문화의 거리라는 혹평을 받게 되기에 이르렀다. 문화의 거리만 조성하면 시장의 활기를 되찾을 줄 알았던 상인들은 낙심하였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거리 발전의 주체로 다시 서게 되었다.
1997년 거리내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부평문화의거리발전추진위원회(약칭 문발추)’를 결성하여, 거리 발전을 위하여 거리축제 개최, 거리공연장 조성 등을 상인들의 자비로 추진하였고, 한편으로 부평구청과 노점상간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거리의 질서를 유지시켜나갔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이 부녀자였던 노점상인들에게 영업 후 노점 이동을 요구한 것은 무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상인들은 역시 자비로 골프 차량을 구입, 노점 이동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2007년 마침내 노점상인들까지 거리 발전의 주체로서 문발추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전국 최초로 건물주, 임대상인, 노점상인들이 한 공동체로서 조직을 형성하게 되었다.
부평상인들에 의해 시작된 이러한 재래시장 활성화 노력은 점차 업계, 학계, 언론계에 알려져, 이제 부평시장은 전국 상인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으며, 2007년 시민단체 도시연대와 함께 조성한 거리내 한평공원 조성 과정은 TV 다큐멘터러 3일 제작진이 고스란히 촬영하여 방영하기도 하였다.
지역상인들의 이같은 자발적 노력과 성과로 인해 정부의 지원도 연이어 이어졌다. 부평 문화의 거리 미관을 개선시키는데 문화체육관광부의 보조금이 지원되어, 흉물이었던 거리내 배전반이 새로운 거리 조형물로 재탄생, 지역 명물이 되었으며, 국토해양부의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부평상인들이 새롭게 기획하였던 어린이 벼룩시장, 청소년 점포 등 다양한 재래시장 살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부평문화의 거리로 인해 다시 활기를 찾은 부평시장의 성공요인은 무엇보다도 스스로 주인이고자 했던 부평상인과 노점상의 자발적 노력에 있었지만, 이에 더해 문화의 거리를 조성해달라는 상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거리 조성을 실현시키고, 상인과 노점상간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한 부평구청의 노력을 간과할 수 없다. 상인들이 문화의 거리 조성 청원운동을 펼치던 96년 당시는 갈등관계에 있던 행정과 상인이 13여년의 관계맺음을 통하여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지역 거버넌스를 이룩해낸 것이다.